티스토리 뷰
* 음감회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본 회지와는 느낌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예경입니다. 두 번쨰 음감회를 짜라파티에서 하게 되었네요. 회장님이 오랜만에 음감회지를 종이로 하면 어떻겠냐고 빛나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신 덕에 이렇게 종이 회지를 씁니다. 저는 매우 몹시 엄청 아날로그 인간인데, 짜라에 오자마자 웹 아카이브에 음감회지를 올리는 식으로 바뀌어서 아쉬웠거든요. 준비를 위해 옛날 음감회지 파일을 뒤적거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넀습니다. 옛날 언어에 웃기도 하고, 추천한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기도 하고, 노래도 들어보고(특히 2014년도 파일이 인상적이었어요)… 굳이 노래를 틀지 않아도 그 사람과 시대가 물씬 묻어나는 게 종이 음감회지더군요. 디지털 세계를 뜰 수 없는 2019년, 저의 시간에만 할 수 있는 건 뭘지 생각하다가 포스트 아날로그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레트로’ 아닙니다. 네오 아날로그도 아닙니다. 포스트 아날로그.) 회지에 손글씨랑 컴퓨터로 작업한 걸 뒤섞었고, 오늘 노래도 전자음이 두드러지는 건 없습니다. 사람 목소리가 전면에 나오고 다 기타나 다른 악기가 뚱땅대는 곡들이에요. 지난번보다 힘을 빼려고 애썼어요. 기분이랑 얼마 전의 날씨랑 요새 지향하는 바랑 잡다한 영향을 받았네요. 그만 말하고 노래로 말하겠습니다.
- 제 맘대로 이름 대문자 처리 안합니다. 불란서식입니다.
- 이탤릭체는 강조하고 싶은 가사예요. 꼭 잘 썼다고 생각하는 가사는 아니에요… 서사에 도움이 될 뿐.
- 앨범 커버 없습니다. 넣어봤는데 안 넣는 편이 더 에뻤거든요. (종이기준)
- 왼쪽 위부터 읽어 나가시면 됩니다. (종이기준)
*
jane birkin / enfants d’hiver / periodé bleue
2008
3:49
좋아한다기보다는 존경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제인 버킨의 (비교적) 최근 곡입니다. 배우, 뮤지션, 에르메스 가방에 이름 빌려주기, 등등 다양한 일을 해온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기 싫지만 charlotte gainsbourg의 엄마라고 하면 바로 아시겠지요. 개인적으로 데님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인류 곁으로 온 데님의 요정이 아닐까 해요. 버킨 하면 serge gainsbourg랑 같이 다니면서 불런서 퇴폐를 상징하던 60년대를 떠올리지만, 저는 80년대 이후 모습과 룩-본인 표현대로라면 아이라이너를 버린-을 더 좋아해요. 확실히 노래부르는 목소리는 옛날보다 듣기 편해졌네요.
*
red hot chili peppers / by the way / dosed
2002
5:11
지난번 음감회에서 극렬한 거부반응을 보인 밴드입니다. 노래가 아니라 보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음을 밝히고 싶네요. 락스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노래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락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좀 이따 등장할, 당시 이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john frusciante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앨범이라고 합니다. 애플뮤직에서 앨범을 설명하면서 unabashedly pretty라는 말을 썼는데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 음감회가 그랬으면 좋겠네요. unabashedly pretty.
*
ibrahim maaloof / yves saint laurent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défilé christian dior
2014
2:44
이 영화 자체보다 사운드트랙 앨범을 더 좋아합니다. 이 곡에서는 무슨 일을 샤샤샤 해낼 것만 같은-그리고 실제로 해내는-군복무 이전의 이브 생 로랑이 그려지지요. 관계없는 소리를 좀 해 보자면 영화를 봤을 때 극중 설정상 굉장히 매력적이어야만 하는 victoire 역을 맡은 배우가 아무런 매력이 없어서 짜증이 났는데, 최근에 좋게 본 불란서 단편영화 judith hôtel의 감독이 꼭 영화 미장센처럼 아름다우시길래 찾아봤더니 바로 그 배우였습니다.
*
elliott smith / either/or: expanded edition / new monkey (keys)
1997
0:42
엘리엇 스미스의 곡입니다. 그 윙윙대는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목소리와 가사가 없는 버젼으로 가져왔습니다. 옛날에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앨범 제목을 키에르케고르의 책에서 따왔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아서 기쁜 제 마음…
*
jane birkin / enfants d’hiver / oh comment ça va?
2008
3:36
네 저는 잘 지냅니다.
*
john frusciante / curtains / the past recedes
why, to be here you first got to die
so i gave it a try
2004
3:54
아까 전직 red hot chili peppers 기타리스트로 잠깐 언급된 존 프루시안테의 솔로 작업입니다. 지금도 팬들이 페퍼스 최고의 기타였다고, 다시 내놓으라고 징징대서 지금 기타치는 사람이 불쌍할 정도로 잘 치지요. 더이상 함께하지 않는 peppers와의 경험과도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는 가사인데, 마음에 들어요.
*
cliché / carré magique / sans arrêt
2016
3:31
정보도 발표한 곡도 너무 없는 불란서 뮤지션(들?)의 곡입니다. 겨우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냈는데, 영향을 준 아티스트로 serge gainsbourg, elliott smith, the pixies 등이 나와있어서 좀 웃겼던… 제 취향은 못 숨기는구나 싶어서. 앞으로 노래를 많이 냈으면 좋겠네요.
*
the rolling stones / exile on main st. / shine a light
warm like the evening sun
1972
4:17
지금 제일 좋아하는 스톤즈 노래. (준비하다 알았는데 oasis의 live forever에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별로 필요없는 정보네요.) 밝으면서도 사람을 힘들게 하는 데가 있는 곡입니다. 노래에 나오는 태양이 아침에 방금 뜬 태양도 아니고, 제일 높은 데 뜬 쨍쨍한 태양도 아니고, 오후의 해라서 그런가 봐요. 롤링 스톤즈 짱.
*
cat power / what would the community think / taking people
who, who never showed you, / about the easy way, / whose robes did they trade you, / for such an easy life
1996
3:26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90년대 캣파워, 혹은 chan marshall의 곡입니다. 요새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쉽지만… 당시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면 톰보이 southern beauty의 이데아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준비하다 알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패션 업계에 ‘neo grunge’룩이라고 불리면서 marc jacobs 등의 디자이너에게 영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 눈이 정확하군요.
*
le volume courbe / i wish dee dee ramone was here with me / i love the living you
2010
3:29
귀여운 앨범 제목에 귀여운 목소리의 귀여운 노래입니다. 알고 보니 roky erickson이라는 사람의 원곡이 있었는데 애플 뮤직에는 있지도 않네요. le volume courbe는 불런서 태생이지만 런던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charlotte marionneau의 밴드입니다. my bloody valentine이랑 투어하고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와 작업을 한 전적이 있네요.
*
stevie nicks / secret love (demo ver.)
1980
3:16
fleetwood mac의 보컬로 가장 잘 알려진 stevie nicks의 솔로곡입니다. 락 역사에 내려오는 마녀-철저하게 좋은 의미에서-의 계보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가 사랑하는 90년대 후배 밴드 hole의 courtney love가 직접 엄청난 영감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의 솔로 작업은 최근의 love와 마찬가지로 정작 발표한 곡은 구린데 데모 버전이 좋아서 슬픕니다.
*************************
옛날 음감회지를 보면서 느낀 건 어떤 물결입니다. 제가 구십년대부터 흘러온 짜라라는 물결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방에 (커트 코베인 명언집을 비롯한) 흔적과 손때를 남겨놓은 선배들이 저랑 비스무레한 고민을 하고 비스무레한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기분이 좋더군요. 그 흐름이 탁해지지 않고 굽이굽이 흘러가기를 바라요. 들어온 지 별로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짜라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선곡한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좋으면서도 좀 부담스러웠네요. 원래 틀고 싶었던 리스트가 있었는데, 파티 분위기랑은 어울리지 않을까봐 뒤로 미뤄놓았어요. 진정한 음침함에 젖어들고 싶으신 분은 다음 기회를 기약해 주세요. 들어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