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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음감회를 준비한 건축학과 정하진입니다. 먼저 바쁘신 기간에 시간 내어 음감회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으로 제 두 번째 음감회를 열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처음과 같이 떨리고 고민되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 주신 짜라투스트라에 감사드립니다.
사람들마다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음악을 사람들의 말소리처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말’이라는 게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에 존재하는 소리인 것처럼 음악도 그 말소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 중 더욱 말하는 듯한 소리처럼 들리는 포크와 발라드 그리고 재즈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 말처럼 들려 이해가 더 잘되는 한국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음감회에서는 ‘말하는 소리’를 주제로 음악을 틀고자 합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많은 곡들은 주로 목소리가 나오지만 목소리만이 아닌 소리들도 말을 하고 있음에 집중해서 들어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쾌하거나 절묘한 음악들을 준비했습니다. 노래들이 잔잔하고 느린 것들이 많아 졸리신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이 노래들을 자장가 삼아 편히 주무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곡 목록(음악가명 – 곡 제목)
1. 시인과 촌장 – 새벽
2. 장사익 – 국밥집에서
3. 김민기 – 봉우리
4. 임인건 – 하도리 가는 길 (feat.이동기)
5. 김두수 – 나비
6. 이민휘 – 어머니의 어머니
7. 이진아 – Mystery Village
8. 야야 킴 – 분노는 나의 힘
9. 정차식 - 두 번째 날
10. 장필순 – 흔들리는 대로
11. 시인과 촌장 – 비둘기 안녕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GLHxoPwGjgDHts_JWEHrgy8ZC1Fd6cN0&si=6z4ZxBseMd9PO_Mk
1. 시인과 촌장 – 새벽
시인과 촌장의 노래에는 초월적인 존재가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현실은 지워지고 가사 속 세계에서 음악을 듣게 됩니다. 벽은 밖과 안을 구분 짓는 가장 기본적인 건축 장치입니다. 세상을 지우고 지우다 보면 높은 벽들만 남지 않을까요? 그 벽들과 마주한 저는 무기력해집니다.
2. 장사익 – 국밥집에서
시대를 거듭할수록 음악산업이 점차 커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노래에는 점점 다양한 색들이 입혀집니다. 그러다 보면 음악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되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저는 해마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국 음악이 뭔지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장사익의 음악을 듣다 보면 원시적인 음악의 성격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의 개념 이전의 노래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고 흥얼거림이었던 것을 기억하게 해 주는 제게는 소중한 음악입니다.
장사익의 노래들은 목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소리들이 때에 맞게 들어왔다가 빠져나오면서 그의 말투처럼 들립니다. 다음 곡도 이런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두 명 모두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가수인데 둘의 이야기를 비교하면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김민기 – 봉우리
이 노래에 나오는 김민기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지금의 목소리와 억양을 만들었을 텐데 그의 인생이 악기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에게 쉴 수 있는 여유와 위로를 건네줍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피리 소리와 함께 나오는 김민기의 목소리는 피리 소리가 하는 말들을 번역해 주는 자막인 것처럼 도 느껴집니다. 최소한의 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포크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이라고 합니다.
4. 임인건 – 하도리 가는 길 (feat.이동기)
제가 서문에 음악을 ‘말’소리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사실 저는 가사는 안 듣는 편입니다. 못 듣는 것이 더 맞는 말이죠. 제게는 가사의 뜻보다는 단어의 단편적인 느낌과 말의 소리만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목소리 주도적인 음악을 들을 때에도 가사의 의미를 하나하나 주어 담는 것도 좋지만 그냥 흘려 보내면서 듣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피곤하고 지칠 때 이 노래를 절로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릴 적”, “하도리 가는 길”, “멀리서 내 님이” 등의 단어가 풍기는 느낌은 저를 편안하게 합니다.
특히 중간에 나오는 호른 소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사실 이 앨범에는 이 노래의 호른 버전이 있습니다. 둘 중에 고민고민 하다가 보컬 버전을 고르게 되었는데 나중에 호른 버전도 한번 들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5. 김두수 – 나비
이 노래는 김두수에 대한 배경을 듣고 들으면 조금 더 재밌게 들을 수 있습니다. 2집 녹음을 끝내고 김두수는 경추 결핵 판정을 받아 반반의 확률로 죽거나 평생 곱추로 살게 될 삶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 길로 그는 3년의 투병 끝에 3집 보헤미안이라는 앨범을 내게 됩니다. 이 곡은 보헤미안의 2번째 트랙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음악 시기에 녹음된 이 노래는 그의 심정을 잘 들려줍니다.
6. 이민휘 – 어머니의 어머니
저는 언제부터 저에게 ‘나’라는 자아가 생긴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저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립니다. 시간을 축으로 성장해 왔을테지만 신기하게 기억들은 시간 순서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오래전 기억을 찾기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 기억의 냄새를 불러내어 주는 것 같아요. 정말 어렸을 적 민속 동화를 읽으면서 상상한 동화의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때면 이민휘가 만든 이 절묘한 감정에 넋을 놓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7. 이진아 – Mystery Village
이진아의 목소리는 매우 독특합니다. 저는 이진아의 목소리는 어떠한 부분이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는 목소리라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 노래에서 그녀는 그 의도적으로 지워진 부분을 피아노로 채워서 말합니다. 정말 재밌는 화법이네요. 피아노를 너무 잘 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8. 야야 킴 – 분노는 나의 힘
이진아와 같은 부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야야 킴입니다. 둘 모두 다양한 사운드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잘합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들을 목소리 바깥의 소리들을 이용하여 기막히게 표현합니다.
9. 정차식 - 두 번째 날
정차식은 애통이 많은 아저씨인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들을 듣다 보면 기분이 참 쌀쌀해집니다. 이번에 그는 신시사이저를 통해 그가 듣는 바람 소리를 들려주는데 거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야속하게 통과하는 바람이 잘 느껴지네요.
10. 장필순 – 흔들리는 대로
저는 이 노래를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모두 같은 진동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낍니다. 사실 저는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대중들과 다른 음악을 듣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즐겼고 지금도 즐깁니다. 그 덕에 개성이라는 것이 생긴 것 같지만 남 들과의 구분에서 나오는 개성은 우울함을 가지고 올 때가 많더라고요. 장필순의 음악을 듣다 보면 기분 좋은 개성이 느껴집니다.
11. 시인과 촌장 – 비둘기 안녕
드디어 오늘 음감회의 마지막 곡입니다. 우선 먼저 지금까지의 음악들을 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음감회는 제가 들은 편안함, 따듯함, 뜨거움, 그리움을 공유해 보고자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들은 나누면 더 더 좋잖아요. 짜라투스트라에서 얻은 좋은 곡들에 대한 조금의 보답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비록 열심 회원은 아니지만 제게 짜라투스트라는 세상을 보는 좋은 창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게 열어주세요!
마지막 곡은 시인과 촌장 2집의 마지막 곡입니다. 앞서 시인과 촌장의 첫 곡에는 일렉기타가 함께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등장합니다. 시인과 촌장 2집에는 하덕규가 동화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함춘호의 일렉기타가 이어받아 솔로를 하는 구조의 곡들이 많은데 동화의 이야기가 어느새 기타 소리로 들리고 있음을 느낄 때면 매번 함춘호의 기타 실력에 매료됩니다. 그럴 때면 확실히 음악은 언어보다 이해하기 쉽고 더 명쾌하고 절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그 맛에 음악 듣습니다~
이상으로 제 음감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