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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회/2023-2

23.10.5

짜라투스트라 2023. 10. 3. 12:59

 안녕하세요 이번 주 음감회를 맡은 산디과 박종성입니다.
 지난번 음감회에서는 덥스텝을 위주로 하여 신나고 쾌활해지는 플레이리스트였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가볼까 합니다.
 이번 플레이리스트는 딱 정해진 장르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고 듣는 타입보다는 그때그때 듣고 싶은 걸 듣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딱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요. 그리고 그 플레이리스트로 음감회를 해보려고 합니다. 
 가끔 그런 날들이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많아지는(?) 날들 아니면 힘든 일을 하고 난 이후에 느껴지는 무력감에 압도당해서 그 어떠한 의지나 즐거움이 남아있지 않은 그런 느낌들로 남은 시간이 가득해져 버린 날들이요. 혹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지나가고 텅 빈 느낌만 남아있는 날도 있어요. 오늘 음감회는 터뜨리고 싶지만 터뜨릴 수 없는 답답함이 있는 마음이 생기는 이런 날들에 제가 듣는 음악들이 모여있는 플레이리스트입니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통일성이 크게 있지는 않지만 공통점이라면 주로 디스토션이 들어간 음악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이번 음감회의 주제는 ”디스토션“입니다. Distortion의 사전적 정의는 왜곡, 변형, 비틂입니다. 음악에서는 반복적이고 일정한 소리의 진동에 노이즈나 변형을 주어 깨지고 일그러진 소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조화롭고 일정하며 깨끗한 소리의 조화를 추구하던 기존의 음악과는 많이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어요. 디스토션이 많이 들어간 음악을 소음이라고 하거나 음악 같지 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기존의 관념적 음악과 많이 다르기 때문일 거에요. 저는 인간이 하나의 음악 같다고 느껴요. 올곧고 조화로운 사람들, 기존의 개념에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스토션이 많이 들어간 우리도 있어요. 남들과 같지 않고 규칙적이지 못하며 누군가에게는 소음같은 존재. 큰 소리를 냈을 때 기존의 음악에 들어맞지 않다고 평가 받는 그런 존재. 하지만 저는 디스토션이 들어간 음악이 좋아요. 소음 같지만 그 소리 자체에 귀 기울이고 들으면 기존의 생각이나 의견, 그리고 판단 없이 그 진동만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음감회지를 너무 두서없이 쓴 거 같네요 아무쪼록 잘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Pretending - SOPHIE

 시작은 소피로 하려고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소피라는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것 같아요.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혼재된 소피라는 공간의 소리가 이상하게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것만 같아요.


Is It Cold in the water - SOPHIE

열심히 헤엄치는 누군가에게 혹은 침전되어가는 누군가에게 물 온도는  다르지만, 너무나도 차가운 때가 있어요. 누구보다 달에 가까워지려다 누구보다 달에 가까운 별이 된 소피의 물은 얼음장 같았고 추위에 힘겨워하는 존재를 위로 하는 물결만 남게 되었습니다.


Infatuation (Sublight Zone) - SOPHIE

 이 곡은 소피의 디럭스 앨범에 포함된 짧은 리믹스입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음감회의 인트로입니다. 뚝 끊겨버린 소피로 시작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제 제대로 음감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as i lie in wait (feat. Your Arms Are My Cocoon) - monom

 몇달 전 길을 걸으며 재작년에 듣던 음악들을 다시 듣고 있던 중에 이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상태로 걸음을 멈추고 이 곡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다소 난해하고 중구난방이지만 그만큼 휘둘려지는 음악입니다.


Frozen Yogurt - monom

 이전 곡과 같은 monom의 곡입니다.
 COHABITATION이라는 게임을 위해 만든 음악이에요. 이 곡은 특이하게도 4분의 7박자인데 4분의 7박자가 주는 불온전하고 어색한 느낌을 줘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다른 음악과 다르게 비어 있는 한 박자가 그저 차분하고 잔잔하지 못하게 합니다.


The launch - monom

 이번에도 monom의 곡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이전에 것을 끝낸다 걸 포함하고 있기에 종결의 감정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시작이라는 건 관성을 가진 우리에게 힘든 것 같아요.


Dead Ends (feat. Machine+) - Astrophysics

No room for me
Few things to make space
Too many things today
So many days
No way for me
The floor is sinking in
The steel is blending
With my hands and feet
And I beg and ask
And I wither unassisted
Please put me at ease
Put me at ease, please
And I beg and ask
And I whisper
Please put me at ease
Put me at ease, please
 편안함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편안함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생존을 위해 생겨난 편안함의 추구가 역설적으로 작용하는 건 세상이 너무 이상하고 뒤죽박죽이기 때문일까요.


Machine4ngel, Tethered - Schizoscriptures

 저번 음감회에도 있던 Schizoscriptures의 새 앨범 수록곡 입니다. 
 Schizoscriptures의 음악은 시끄럽지만 저에게는 가장 조용한 음악입니다. 몇달 전 저는 ADHD 진단을 받고 제가 ADH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ADHD를 가지고 있으면 한가지 생각을 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머릿 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목소리들이 쉬지 않고 심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생각의 수를 줄이기 위해 항상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있어요.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다른 일에 집중 하려고 해도 그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는 항상 더욱 괴롭게 했고 그럴 때마다 저는 Schizoscriptures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생각을 압도할 만한 시끄러움과 그 안에서 설계되어 있는 하나하나의 다른 소리들이 다른 음악들은 할 수 없던 일을 해주었습니다. 


Creep on Me Praying - A1 Turbo

 음악이 잔잔하고 차분할 수록 슬픈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곡의 초반부는 잔잔하게 진행되다가 중반부에 들어서 디스토션이 들어가고 드럼이 추가되면서 브레이크 비트로 장르가 바뀌어요. 보통이라면 밝아져야 할 분위기가 오히려 시끄러워지고 심란해지면서 더 우울해지는 것 같습니다.


Still, We’re Lost - Yufi

 이 곡은 눈을 감고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소리를 들으려고 하거나 의미를 생각하거나 하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한 의지를 놓은 채로 멈추면 좋겠습니다. 모든 게 없는 세상에서는 방향조차 없어 길을 잃을 수 없고 그런 세상을 잠시라도 느끼고 싶어요.


Comfort Noise - umru

 이 플레이스트에 가장 처음으로 추가된 음악이면서 이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한 곡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항상 책상 아래에 들어가 있었어요. 기어들어가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뭔가 편안해지는 공간이었어요. 몇시간 동안이나 웅크려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울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책상은 치워지고 웅크려 들어가기엔 너무 커져 버렸어요. 어느날 이 음악을 듣다 책상 아래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곡은 새 책상이 되었습니다. 책상 아래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Lnkrot - umru

 Linkrot은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점점 부패되어 가는 인터넷 링크입니다. 수장된 시체처럼 점점 침전되다 서서히 사라져 어느 순간에 바닥에 닿아버리는 그 순간이 오면 주위엔 아무도 없겠지만 평화로울 것만 같아요.

 


Sayonara - Tipper

 이름과는 다르게 신기하게도 이 곡은 앨범의 첫번째 인트로 곡 입니다. 음감회가 끝나가면서 많았던 생각이나 감정들을 이 음악으로 정리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번 음감회의 아웃트로로 들어가는 인트로로 넣었습니다.


Good Night, I Hope the Future Brings You Only the Best! -Himera

 꿈꾸는 미래가 되진 않더라도 그래도, 진짜 그래도, 밤에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눈을 다시 뜨지 않더라도.


꽃피면 같이 걸어줘요 - 키라라

 원래는 이전 음악으로 끝내려 했는데 이 한 곡을 마지막에 넣게 되었어요.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멈추고, 겨울이 지나고, 이불 밖으로 나와 꽃이 핀다면 같이 걸어줘요!!!


 저의 음감회는 여기까지 입니다. 음악 들을 때 하던 생각들을 막 적으니까 제 뇌처럼 뒤죽박죽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네요. 그래도 옆에 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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